예수님의 영광을 보라
admin
2026.06.10 20:40
설교 제목: 예수님의 영광을 보라

본문: 누가복음 9:28-3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우리는 종종 문제를 바라봅니다. 현실을 바라보고, 실패를 바라보고, 사람을 바라보고, 세상을 바라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다른 방향을 제시합니다.
오늘 변화산 사건은 우리에게 단 한 가지를 가르쳐 줍니다.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의 영광을 보라."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변화산에서 예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경험은 훗날 십자가와 박해를 견디게 하는 믿음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도 예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믿음을 배우고자 합니다.
1. 기도하는 자리에서 영광이 나타난다
28절입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누가는 특별히 "기도"를 강조합니다.
변화산 사건은 기적의 현장이기 전에 먼저 기도의 현장이었습니다.
29절을 보면
"기도하실 때에"
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여기서 "기도하다"는 헬라어
προσεύχομαι
(프로슈코마이)
입니다.
이 단어는 단순히 요청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다"
"하나님을 향하여 자신을 드리다"
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놀랍게도 예수님의 영광은 사역 현장이 아니라 기도 자리에서 드러났습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능력을 원하고 응답을 원하지만 기도의 자리에는 머물지 못합니다.
그러나 변화산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기도 없는 영광은 없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무엇을 얻어내는 기술이 아니라 하나님을 보는 자리입니다.
2. 예수님의 본래 영광이 드러나다
29절입니다.
"용모가 변화되고"
여기서 "변화되다"는 헬라어
ἕτερον
(헤테론)
이라는 표현이 사용됩니다.
"다른 모습이 되다"
"전혀 다른 상태가 되다"
라는 뜻입니다.
마태복음에서는
μεταμορφόω
(메타모르포오)
즉 "변형되다"라는 단어가 사용됩니다.
이 단어는 영어 metamorphosis의 어원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새로운 영광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원래 영광스러운 분이셨습니다.
다만 육신 속에 가려져 있던 영광이 잠시 드러난 것입니다.
이어지는 표현을 보십시오.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광채"는 헬라어
ἐξαστράπτων
(엑사스트랍톤)
입니다.
"번개처럼 번쩍이다"
"눈부시게 빛나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영광은 세상의 빛과 다릅니다.
그분은 빛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 빛을 내시는 존재입니다.
요한은 훗날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요 1:14)
라고 증언합니다.
3. 모세와 엘리야가 말한 것은 십자가였다
30절과 31절입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납니다.
모세는 율법을 대표합니다.
엘리야는 선지자를 대표합니다.
즉 구약 전체가 예수님 앞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무엇을 이야기했습니까?
31절입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
여기서 "별세"는 매우 중요한 단어입니다.
헬라어
ἔξοδος
(엑소도스)
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출애굽기의 제목 Exodus와 같은 단어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단순한 죽음이 아닙니다.
새로운 출애굽입니다.
애굽의 노예 상태에서 이스라엘을 건져낸 것처럼,
예수님은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자기 백성을 건져내시기 위해 십자가를 향해 가고 계셨습니다.
변화산 영광의 중심에도 결국 십자가가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영광은 세상의 성공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통한 구원의 영광입니다.
4. 영광을 보았지만 베드로는 이해하지 못했다
32절은 의미심장합니다.
"졸다가"
영광이 나타나는 순간에도 제자들은 잠들어 있었습니다.
인간의 연약함입니다.
깨어난 후에야
"그 영광을 보았다"
고 기록합니다.
여기서 "보다"는 헬라어
εἶδον
(에이돈)
입니다.
단순히 눈으로 본 것이 아니라
"깨닫다"
"인식하다"
라는 의미를 포함합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여전히 영광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33절입니다.
"초막 셋을 짓게 하소서"
베드로는 변화산에 머물고 싶었습니다.
고난 없는 영광을 원했습니다.
십자가 없는 천국을 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길은 변화산에 머무는 길이 아니라 예루살렘 십자가로 내려가는 길이었습니다.
신앙은 체험을 붙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5. 하나님 아버지의 최종 명령
35절입니다.
구름 속에서 음성이 들립니다.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그리고 마지막 명령이 나옵니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여기서 "들으라"는 헬라어
ἀκούετε
(아쿠에테)
입니다.
단순히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닙니다.
"순종하라"
"귀 기울이라"
"삶으로 받아들이라"
는 의미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하나님이
"그의 영광을 보라"
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그의 말을 들으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진짜 영광 체험은 눈으로 보는 것보다 말씀에 순종하는 데 있습니다.
6. 예수만 남더라
36절은 오늘 본문의 결론입니다.
"예수만 보이더라"
모세도 사라졌습니다.
엘리야도 사라졌습니다.
구름도 사라졌습니다.
영광의 현상도 사라졌습니다.
오직 예수님만 남았습니다.
이것이 변화산 사건의 핵심입니다.
신앙의 목적은 체험이 아닙니다.
예수님입니다.
은혜의 감정도 지나갑니다.
환경도 변합니다.
사람도 떠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남으십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변화산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무엇을 보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세상의 문제입니까?
내 현실입니까?
사람입니까?
아니면 예수님의 영광입니까?
변화산의 핵심 단어는
ἔξοδος (엑소도스) 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 우리를 죄에서 건져내셨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그의 말을 들으라."
결국 신앙의 마지막 목적지는 변화산의 빛이 아니라
그 영광의 주인이신 예수님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우리는 고백합니다.
"주님, 세상이 아니라 예수님의 영광을 보게 하옵소서."
아멘.